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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Brake

96~97. Lee Su-il and Shim Sun-ae(The Korean Film Museum, Seoul)_이수일과 심순애(한국영화박물관, 서울상암) 본문

100 Great Men Who Brightened Korea

96~97. Lee Su-il and Shim Sun-ae(The Korean Film Museum, Seoul)_이수일과 심순애(한국영화박물관, 서울상암)

GBbrake 2020. 2. 29. 21:02

한국영화 역사에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캐릭터는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다. 요즘 눈높이로 보기에는 뻔한 줄거리이지만 소설로 발간될 당시인 1913년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927년과 1965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오랬동안 사랑을 받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세계의 권위있는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101년 한국 영화 역사상 아카데미상 최종후보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2020 최다 수상작이 되었으니 제작진, 배우는 물론이려니와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슴 뭉클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영화는 어떻게 발전되어 온 것인지 한국영화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가 서울 상암동에 있어 들러 보았다.

 

 

한국영화박물관은 서울의 서쪽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한국영상자료원 내부 1층에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장소이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으니 대중교통이용을 추천드린다.

 

Address : 400, World Cup buk-ro, Mapo-gu, Seoul, Republic of Korea

 

 

평소에 관람객이 많지는 않은 듯 건물이나 주차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주차장의 입구가 다른 건물과 한국영상자료원 건물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찾아오실 때 주의하시길 바란다. 

 

주차를 한 뒤 1층으로 올라와서 표지판을 따라 한국영화박물관으로 향한다. 비교적 최근인 2008년에 개관한 박물관이라 그런지 건물이 깔끔하다.

 박물관의 입구에는 영화와 관련된 각종 정보들이 전시되어 있다. 

 1970~80년대의 영화 촬영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은 전시물. 필자도 근처에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래 구경꾼들처럼 먼 발치에서 구경을 하곤 했다. 

 

 박물관 한 편은 상시전시실이고 다른 쪽은 기획전시실로 기간에 따라 다른 전시를 하고 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박물관 입장료는 무료이다. 주차확인증을 이 곳에서 받으면 일정시간 무료주차가 가능하니 잊지말고 확인증을 받아 두시길.

 박물관 상시 전시실 내부의 모습. 한국영화의 역사를 한 눈에 볼수 있도록 영화, 대본, 장비, 기록영상 및 사진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고 있다.

 1900년대 초반 한국영화 초창기에 사용되었던 촬영용 카메라, 필름과 대본들.

 요즘이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을 하니 실수를 해도 지우고 다시 촬영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비싸고 무거운 필름을 들고 다니면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고 실수를 하게 되면 서로에게 많이 미안했을 것 같다. 

 한국 근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전쟁이다. 6.25 전쟁, 월남전 등은 한국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영화는 보통 상업적 요소와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한 흥미거리를 소재로 제작이 되기 때문에 당시 사회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어서 시대별로 제작된 영화들을 보면 각 기간별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엿볼 수 있다. 

 아래는 1956년에 제작된 자유부인이라는 영화를 통해 전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코너이다. 

 1980년대 거리에는 아래와 같이 개성이 넘치는 각종 영화광고 포스터들이 여기 저기 붙어 있어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영화제작기술이 급속도로 성숙되어 지게되고 해외로 수출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에 더해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여가생활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관람객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아래 왼편의 영화 '쉬리'는 1999년 개봉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관객 200만을 처음으로 돌파하였다.

 DVD와 케이블 채널이 보급되면서 사라진 비디오 플레이어과 비디오들이 필자의 1990년대 향수를 자극한다. 당시 한국의 거의 모든 골목길에는 비디오 대여점들이 있었으며 필자와 같은 손님들이 주말이나 휴일저녁에 비디오 한 편을 즐기기 위해 자주 들르곤 했다. 

 영화 장치가 개발되기 전 애니메이션 장난감으로 활용된 조에트로프이다. 움직이는 다양한 모습을 그린 뒤 원기둥에 붙여서 회전시키면 착시현상을 통해 그림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인다. 지금보면 시시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으며 귀족들의 모임에서 즐겨 상영되곤 했다.

감독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천만 관객의 위업을 달성한 극한직업의 포스터 및 주인공들이 입었던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주제가 무겁지 않아도 재미있으면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공식을 증명해 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간접 홍보된 수원왕갈비통닭은 영화흥행 후 실제 여러 치킨집에서 메뉴에 추가하여 현재까지 판매중에 있다. 

 영화박물관을 관리중인 한국영상자료원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오늘도 노력중인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린다.

 필자가 방문할 당시 특별 전시실에는 한국영화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이제는 작고하신, 원로배우인 고 신성일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었다.

 미국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던 배우 제임스 딘의 이미지와 비슷한 신성일은 아래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로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스타가 되었다. 

 전시관 내에는 맨발의 청춘에서 신성일이 연기한 주인공 두수의 방을 재현한 공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래는 맨발의 청춘 주인공들의 의상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신성일의 복장이었던 자켓과 청바지 그리고 스포츠머리는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신성일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60~70년대에는 그와 대적할 만한 경쟁 배우들을 찾아볼 수 없었을 정도로 당시 한국 영화계에 별과 같은 존재였다고 하며 생전에 52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2018년에 작고하신 고 신성일 배우를 기리기 위한 이 전시회는 크지 않은 규모에 고인의 생전 발자취를 알차게 구성해 놓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차 없는 넓은 광장이 있어 산책을 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한 눈에 보고 싶으시다면 이곳 한국영화박물관에 한 번 들러보실 것을 추천드린다.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있는 것 같은듯한 조각상.

  한국영화의 시작은 이수일과 심순애 같이 다른 나라의 대본을 번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기생충'과 같이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더 많은 작품들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밝은 한국영화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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